南道 정자기행(658)-정자詩로 만난 인물-위계도(魏啓道)

뉴스일자: 2013년09월14일 20시50분

소쇠한 고표(高標)는 학이 그늘에 있는듯/은둔한 그마음 뉘가 있어 알랴
歲寒을 맺은 맹세 천묘(千畝)의 대밭이요/瑞禽(서금. 벼슬)오기를 기다린 오동은 천길이로다
瀟灑高標鶴在陰 甘心筮遯有誰禁 締寒歲盟竹千畝 待瑞禽來梧十尋

강위에 정자는 선조업을 이었고/책상머리 훈시는 자손의 마음이로다
여러 어른 따라서 이웃에 살면서/가을 달 봄바람에 더불어 함께 읊었으면
江上亭承先祖業 床頭訓示子孫心 擬從諸丈居隣卜 秋月春花與共吟

이 시는 한국화가 금봉 박행보 등 많은 제자를 키우고 광주. 화순 일대에 많은 글을 남긴 한학자(漢學者)인 실학자 장흥의 존재 위백규(存齋 魏伯珪)의 후손 만취(晩翠) 위계도(魏啓道 1926~1990)가 화순 사평천을 바라보고 있는  최근에 명승지로 승격된 민주현 정자 임대정(臨對亭)에서 지은 시이다.

위계도(魏啓道)는 당시에 위당 정인보(爲堂 鄭寅普), 현산 이현규(玄山 李玄圭)와 함께 한말 3대 경학문장가로 추앙받았으며  호남의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였던 구례군 토지면에서 살다가 후에 전라남도 화순군 남면으로 이사와 이곳에서 학문을 연구한 효당 김문옥(曉堂 金文鈺, 1901∼1960)에게 사사 받았다.

그는 정자에도 시문을 남겼다. 나주시 봉황면 철천리 철야마을 입구에 있는 유서 깊은 정자 만호정에서는

천년세월 이 정자가 산 언덕에 자리하니/남방에서 제일가는 영평 고을이 되었도다.
높이 솟은 산 기운은 그지 없이 뒤어나고/넘쳐 흐른 호수빛은 한이없이 길었도다.

그중에 화순군 남면에 있는 석현정에서 원운에 차운(次石軒亭韻)하기를

몇해를 경영하여 공을 비로소 이뤘으니/언덕 멈추고 시내 감싸 평지를 얻었도다
왕년에 부조(父祖)님의 장리(杖履) 머문 곳인데/오늘날 자손들이 추모정을 느꼈어라
經營幾載告功成 岡駐溪廻得地平 父祖曾年杖履處 子孫今日羹墻情

산은 꼬진 홀기처럼 머름앞에 서있고/물은 밝은 거울같아 밑바닥이 보이구려
나복 마을에 문헌집 비록 많다 하지만/김씨집이 가성을 가장 오래 보전하였네
山如搢笏當前立 水似開○徹底明 蘿○縱多文獻宅 公家最是保家聲

또 그는 석현정에서 멀지 않은 곳 남면 절산리 절동에 있는 청강서실(淸江書室)에서 은거 학구를 연구하면서 이곳에서 글을 짓는다.

청강(淸江)에 우거한지 몇해나 돌아왔는가/가엾어라 밝은 달은 마음을 비쳐주누나
선생의 옛집에 끼친 향기 머물렀는데/때로는 제붕(諸朋)들과 강한 장막 열었도다.
○居淸江歲幾回 自憐明月照心來 先生古宅遺芬在 時與諸朋講帳開

나주지역의 대표적인 정자로 고려 때 창건되었다고 전하고 있는 전라남도 나주시 봉황면 철야1길 107에 서씨·정씨·윤씨의 3성씨(三姓氏)가 관리하며 향약과 동약을 시행하였던 곳 만호정에서도 시를 남겼다.

천년세월 이 정자가 산 언덕에 자리하니/남방에서 제일가는 영평(남평) 고을 되었도다.
높이 솟은 산 기운은 그지없이 뛰어나고/넘쳐 흐른 호수빛은 한이없이 길었다네

시를 읊은 그 다음에 맑은 술잔 기우리고/시를 읊은 그 다음에 농사 말을 나눴다네
지난 옛날 남전향약 오늘까지 이어오니/서씨 정씨 그 행적이 길이길이 빛났도다.

그는 전북 고창군 대산면(大山面)에 있는  조선중기의 무신 승군자감정(陞軍資監正)을 지냈고  병자호란 때에 임금을 호위했던 서죽헌(棲竹軒) 김첩(金渫1591~1656)이 낙향해 초막을 짓고 연구실 겸 서당으로 후학을 가르치며 살았던 곳으로 서죽헌(棲竹軒)이라고 부렀던 지금의 영취정(永翠亭)에 시를 남겼다.

소나무 대나무 심은 푸른 숲에/한 선비의 외로운 정자 지금까지 보전되었네
뇌수산 남쪽 묵태씨의 은거 생활을 방불하고/북제의 북산 공씨의 이문(移文) 읊으며 소요(逍遙)하네.

충성 온전히 하려 인끈 던지니 마음이야 외로웠겠지만/단을 쌓고 망곡하였으니 자취를 찾을 수 있도다.
어찌 세월 가는 데 다른 책력 펴볼까/문 닫고 무릎 끼고 긴 신음만 하누나.

 
문화.오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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